본문바로가기

제2장

동우화인켐으로
새출발

1997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우리나라까지 강타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그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외환위기는 곧바로 기업의 경영 위기를 몰고 왔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7월에는 자산 규모 8위이자 국내 3대 자동차기업인 기아그룹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IMF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잇달아 도산하는 가운데 동우반도체약품은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사실 동우반도체약품은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기 전인 1997년 초반부터 긴축경영을 추진해 오고 있었다. 국가경제가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을 걷자 불황국면에 미리 대응한 것이었다. 제품원가 등 모든 분야에서의 경비절감 활동을 생활화하고, 비생산적인 요소에는 자원의 투입을 억제했다.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힘입어 동우반도체약품은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서도 안정적인 경영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경영위기에 처한 동양화학의 구조조정이었다. 동양화학은 IMF 외화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이 심화되자 구조조정을 통해 소다회 및 종합화학 중심으로 사업 재편을 꾀했다. 그 일환으로 합작회사인 동우반도체약품의 소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동양화학은 1997년 12월 스미토모화학에 지분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처음 스미토모화학은 난색을 표했다. 스미토모화학은 외국 합작사의 경우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해 현지 기업과 지분을 공유했다. 외국에 100% 지분의 자회사를 설립한 전례가 없었다. 그러나 동우반도체약품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성장 전망은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됐다. 동우반도체약품 임직원들도 스미토모화학의 지분 인수를 바라고 있었다. 급변하는 반도체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과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출범에서부터 함께해 온 스미토모화학이 최적의 파트너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미토모화학은 고심 끝에 동양화학 지분 전체를 인수하기로 하고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협상 결과 동양 화학 지분 50%에 대해 3,500만 달러(527억 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동우반도체약품 직원 고용은 구조조정 없이 100% 승계하기로 결정했다.

1998년 2월 스미토모화학의 지분 인수가 마무리되자 동우반도체약품은 안정된 분위기에서 생산과 판매에 주력했다. 당시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국내 반도체산업은 약간 위축됐다. 그러나 그 폭은 매우 미미했다. 1998년 생산량이 전년 대비 약 24억 달러어치 감소 했을 뿐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오히려 35억 달러나 증가했다. 더욱이 급격히 치솟은 환율은 오히려 달러를 결제통화로 쓰는 반도체업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동우반도체약품은 다른 업종과 달리 IMF 외환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했다. 국가가 IMF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도의 매출은 900억 원을 넘어섰다. 1997년 459억 원에 비해 무려 두 배나 뛰어올랐다. 특히 이 기간 인위적인 감원을 단 한 명도 실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원이 약 15% 증가해 1997년 110명에서 1999년 127명으로 늘어났다.

경영체계 정비

  • 1999.04.01 동우화인켐 사명 변경식

    1999.04.01 동우화인켐 사명 변경식

  • 1999.04.01 제2의 도약 선포

    1999.04.01 제2의 도약 선포

  • 사보 동우가족

    사보 동우가족

1998년 2월 동양화학의 지분을 전량 인수한 스미토모화학은 동우반도체약품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나섰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미 기반을 다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케미컬 외에 주력 품목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다각적인 검토 결과 정밀화학 등의 신규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에는 새로운 공장부지의 확보도 포함됐다.

신규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명 문제가 대두했다. 동우반도체약품이라는 상호는 반도체약품으로 사업영역을 한계 짓고 있어 고객이 오해할 수 있었다. 정밀화학 등 새로운 사업 진출을 앞두고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 사명이 요구됐다.

1999년 3월 사명을 변경하기로 한 동우반도체약품은 임직원 대상 공모를 실시했다. 그 결과 ‘동우화인켐’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화인켐(Fine Chemical)에는 정밀화학의 뜻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1999년 4월 동우화인켐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새 출발했다. 1991년 설립 이후 8년 만이었다.

동우화인켐은 사명 변경 이후 스미토모화학의 100% 주주 변경과 맞물려 새로운 기업문화 구축에 나섰다. 2000년대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컴플라이언스 관리체제를 도입해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우리사주조합제도 도입, 사보 발간 등을 통해 구성원 간 결속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도모했다.
2000년대 들어 윤리경영은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국내 법규는 물론이고 국제표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영활동을 펼치는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었다. 스미토모화학이 먼저 2003년 7월 ‘스미토모화학 기업행동 매뉴얼’을 제정했다. 동우화인켐은 같은 해 11월 ‘동우화인켐 기업행동 매뉴얼’을 마련했다. 스미토모화학의 방침에 부응함과 동시에 임직원들의 윤리의식 제고 및 고객·시장과의 신뢰 구축과 확립을 목표로 했다.
‘동우화인켐 기업행동 매뉴얼’은 사회통념상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사항들을 성문화한 것으로, 누구나 지켜야 하는 내용들을 포함했다. 주변 환경의 세계화를 반영해 해외에서의 사업활동을 포함한 모든 사업활동을 영위함에 있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었다.

이에 앞서 2001년 8월 임직원의 복리증진과 애사심 고양을 위해 우리사주조합제도를 도입했다. 근속년수에 의해 정해진 청약한도에 따라 청약을 진행했다. 총 20만 주 중 15만 3,350주가 청약돼 77%의 청약률을 기록했다. 2002년 3월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우리사주에 첫 배당금을 지급했다. 2001년에 이어 2002년 6월에도 총 20만 주의 우리사주를 발행했다. 주식의 종류는 상환청구권부 배당우선주로서, 매년 액면가 대비 최저 20%를 우선 배당하는 내용으로 매입 후 1년이 경과되면 주주의 청구에 따라 회사가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으로 1999년 11월 사보 『동우화인켐』을 창간했다. 사원 간의 연대감을 조성하고 사원과 회사 간 이해를 증진시켜 회사 고유의 기업문화를 창출함과 동시에 경영정보와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겠다는 취지였다. 연 4회 발행된 사보는 경영진의 메시지와 회사의 주요 뉴스, 관련 업계 정보, 직원들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내용들로 구성했다.

이후 2002년 동우STI와 동우광학재료가 설립됨에 따라 2003년 봄호(통권 12호)부터는 제호를 『동우가 족』으로 변경, 발행했다. 『동우가족』은 3개사가 ‘동우’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한마음, 한 가족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자는 뜻을 담았다. 사보 『동우가족』은 2005년 3개사가 합병한 이후에도 같은 제호를 유지하며 발행됐다.

한편 스미토모화학은 1998년 동양화학의 지분 전량(50%) 인수에 이어 2002년 12월 이토추상사의 소유 지분 10%도 전량 인수했다. 이로써 스미토모화학은 동우화인켐의 100% 주주가 됐다. 이에 앞서 2002년 3월 신임 김상렬 대표이사 사장이 동우화인켐 2대 사장에 취임했다. 동우화인켐 설립 주역으로서 성장 토대를 닦은 한의섭 사장은 부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