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제1장

창립과
국내 소재산업의 개척

디스플레이용 케미컬 및 반도체용 PR사업 진출
  • 1995.02 삼성전자 TFT-LCD 양산공장 준공

    1995.02 삼성전자 TFT-LCD 양산공장 준공

  • 1996 삼성전자 12.1형 TFT-LCD

    1996 삼성전자 12.1형 TFT-LCD

LCD산업은 1990년대 들어 PC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모니터와 노트북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2의 반도체’로 각광받았다. 1992년 36억 2,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LCD 시장은 불과 3년 만인 1995년에는 2.5배 규모인 92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국내 업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해 TFT-LCD 분야에 발 빠르게 진출했다. S사는 1991년 1월 삼성전관(현 삼성SDI)으로부터 TFT-LCD사업을 이관받으면서 기흥에 연구라인을 건설했다. 1992년 7월 국내 최초로 10.4형 컬러 TFT-LCD를 개발한 S사는 1993년 12월 기흥사업장에 TFT-LCD 1라인 건설에 나서 1995년 2월 완공했다.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은 1987년 금성사(현 L전자) 중앙연구소에서 TFT-LCD 개발에 들어갔다. 이후 1990년 3월 LCD 안양연구소를 설립해 TFT-LCD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3년 후인 1993년 9월 LCD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L전자 내에 LCD사업본부를 출범시키고 경북 구미에 LCD 1공장(P1)을 착공했다. 구미 P1공장은 1995년 1월 준공돼 같은 해 9월 9.5형 TFT-LCD 양산을 시작했다.

TFT-LCD사업을 본격화한 S사는 1993년 초 동우 반도체약품에 혼산 공급을 요청했다. 아직 LCD 제1라인이 착공되기 전이어서, 주 공급처는 기흥연구소의 연구라인이었다. 혼산은 동양화학 시절부터 익산공장에서 소량 생산하고 있었으므로 낯설지 않은 품목이었다.

동우반도체약품은 기존 설비를 개선해 1993년 2월부터 혼산제품을 생산했다. S사 LCD 라인의 혼산 사용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이듬해인 1993년 5월 MA-S03 탱크를 1m3 에서 3m3 로 증설했다. 1993년 10월 웨이퍼 업체인 포스코휼스로부터 혼산 공급을 요청받았다. 동우반도체약품은 웨이퍼 세정용 혼산 플랜트를 건설하기로 했다. 외부에 맡기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판단해 자체적으로 설계부터 시공, 허가까지의 전 공정을 생산부에서 맡아 수행했다. 그 결과 이듬해 1994년 2월 웨이퍼 세정용 혼산 플랜트를 준공하고 같은 해 3월 생산을 개시했다.

반도체산업의 성장에 따라 제조업체들의 혼산 사용량은 계속 증가했다. 동우반도체약품은 1994년 후반 혼산 플랜트 증설을 계획했다. 기본 및 상세설계 후 1994년 12월 착공해 1995년 5월 준공했다. 시운전을 거쳐 같은 해 6월 가동을 시작해 웨이퍼용 혼산 공급을 확대해 나갔다.

1991년 TFT-LCD 연구를 개시한 S사는 미국 싸이언텍으로부터 에천트를 공급받았다. TFT-LCD의 배선 형성 공정에 사용되는 금속전극용 식각액인 에천트는 TFTLCD 생산에 필수적인 케미컬이었다. 때문에 S사는 미국에서 에천트를 계속 공급받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동우반도체약품에 공급을 요청했다.

동우반도체약품은 에천트 역시 동양화학 시절부터 소량 생산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어렵지 않게 S사 기흥 연구소에 에천트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급량이 소량이어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더욱이 생산품의 종류가 많은 데 비해 수익이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1992년에 공급한 에천트는 MA-SO2, MA-SO3 두 종류로, 생산능력이 각각 월 5톤 정도에 불과했다. 매출액도 연간 약 1억 원대였다.

S사가 1995년 2월 기흥사업장에 TFT-LCD 제1라인을 완공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1라인은 370× 470mm 사이즈의 기판을 월 2만 매 생산할 수 있는 양산라인이었다. 같은 해 4월 S사는 1995년 4월 550× 650mm 기판을 월 2만 5,000매 생산할 수 있는 양산 2라인을 세계 두 번째로 준공했다. 1996년 4월부터는 양산 1라인에서 12.1형 제품을 생산했다. 1996년에는 13.3형 제품을 일본 업체와 거의 동등한 시점에 출시했다.

같은 해 모니터용 14형과 15형 TFT-LCD를 개발한 데 이어 세계 최고의 해상도를 가진 21.3형 TFT-LCD를 개발함으로써 대형 TFT-LCD의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
S사는 공격적인 선행 투자를 이어갔다. 1996년 12월 TFT-LCD 3.5세대 600×720mm 라인(3라인)을 천안사업장에 착공했다. 1998년 2월 3라인 가동으로 기존 생산능력에 비해 75% 이상 증가된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갖추며 TFT-LCD산업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L전자는 1995년 구미 P1공장(1세대)에 이어 1998년 2월 구미 P2공장(2세대)을 준공했다. 1998년 11월 L전자와 L반도체에 나뉘어 있던 LCD사업을 통합하고, 이듬해인 1999년 8월에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손을 잡고 L-필립스 LCD를 탄생시키며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내 업체들의 세계 LCD시장 선도는 동우반도체약품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 물량 요청이 늘어났다. 동우반도체약품은 1995년 제1차 TFT-LCD용 에천트 공장을 준공했다. 테플론 라인 탱크(Teflon Lined Tank)를 최초로 설치했는데, 탱크 크기는 제품별로 8~12m3 였다. 월 생산능력은 132~192톤 규모였다. S사의 모든 라인에 에천트를 공급했으며, 공급량이 적었던 L전자에도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납품했다.

판매량이 증가하자 생산공장 증설에 나섰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우반도체약품 자체에서 엔지니어링 및 설계를 수행했다. 1997년 11월 기존의 고체합성설비를 모두 철거하고, 2층 구조로 건물을 개조해 에천트 생산설비를 설치했다. 이로써 전체 생산량은 1995년 월 654톤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난 월 1,272톤으로 증대됐다.

당시 국내에는 에천트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동우반도체약품은 국내 TFTLCD용 에천트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특히 과산화수소, 황산 등 반도체약품을 생산하면서 최신의 정제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고순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개발 노하우까지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고품질의 에천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익산기술연구소가 고객사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에천트를 시의적절하게 개발해 고객만족도와 시장경쟁력을 높여 나갔다.

디스플레이용 케미컬 및 반도체용 PR사업 진출

  • 1996.07 Photo Resist의 제조기술에 관한 기술실시권계약서

    1996.07 Photo Resist의 제조기술에 관한 기술실시권계약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궤도에 오른 1996년까지도 국내 반도체업체의 PR 수요량 대부분을 외국 업체가 공급하고 있었다. PR(Photo Resist: 감광성 수지)은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 패턴을 형성하도록 표면에 코팅하는 액체로서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화학물질이다. 그럼에도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국산화가 시급한 품목이었다.

동우반도체약품은 종합반도체약품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PR사업 진출을 검토했다. 스미토모화학이 PR 생산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제품 개발과 생산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스미토모화학은 동우반도체약품의 PR사업 진출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기술장벽이 높은 데다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우반도체약품은 사명에서도 드러낸 것처럼 반도체약품사업을 주력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PR 생산 및 판매가 필수적이었다.
스미토모화학 본사까지 찾아가 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했다. 동우반도체약품의 굳은 의지에 스미토모화학은 PR사업 진출을 승인했다. 물론 PR 개발은 쉽지 않았다. 익산공장에서 기술 개발을 시작했으나, 원천기술이 확보되지 않아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20가지가 넘는 PR 제조 포뮬레이션 중 어떤 방식을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1997.05.12 동우반도체 感光材(감광재) 공장 건설(매일경제)

1997.05.12 동우반도체 感光材(감광재) 공장 건설(매일경제)

제품 개발과 함께 1996년 11월 PR 플랜트 건설에 착공해 1997년 6월 준공했다. 총 70억 원을 투입해 3m3 규모 2기, 1m3 규모 1기의 플랜트를 완공했다. 스미토모화학에서 연수를 받은 동우반도체약품 기술진의 시운전을 거쳐 1997년 7월 반도체용 PR 양산에 돌입했다. 이로써 동우반도체약품은 반도체용 PR사업의 초석을 마련했다.